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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년 9월~10월 대한민국 극장 우리들이 알고있는 주요 외화 상영작

    출처 : NAVER뉴스 라이브러리 1976년09월03일 조선일보 캡처
    • 원제: The Poseidon Adventure (1972, 20th Century Fox)
    • 감독: 로널드 님 (Ronald Neame)
    • 주연: 진 해크먼 · 어니스트 보그나인 · 레드 버튼스 · 셸리 윈터스
    • 수상: 1973년 제45회 아카데미 주제가상 및 특수촬영효과상 수상

    1976년 가을, 국제극장에서 다시 상영된 **《포세이돈 어드벤처(The Poseidon Adventure)》**는
    배가 뒤집히는 재난보다 더 큰 인간의 내면적 전복을 그린 영화였다.

    새해를 맞아 뉴욕에서 그리스로 향하던 호화 여객선 ‘포세이돈호’가
    항해 도중 거대한 해저 지진에 휘말려 순식간에 전복된다.
    객실은 천장이 바닥이 되고, 수백 명의 승객들이 암흑 속에 갇힌다.
    생존자들은 서로 협력하며 탈출구를 찾지만, 위기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용기, 희생이 교차한다.
    진 해크먼이 연기한 스콧 신부는 남은 사람들을 이끌어 ‘위쪽’,
    즉 뒤집힌 선박의 바닥 방향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여정은 끝없는 절망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순간은 단연 연회장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장면이다.
    거대한 파도가 들이치며 샹들리에가 아래로 떨어지고,
    순식간에 천장이 바닥이 되는 비현실적인 혼란이 압도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마지막, 스콧 신부가 밸브를 붙잡고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
    절망 속에서도 인간이 지닌 숭고한 희망을 상징한다.
    불길 속에서 들려오는 그의 기도 —
    신이여, 제발 이들을 살려주소서!” — 는 지금도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1974년 2월 국제·명보극장에서 최초 개봉된 이후,
    3년 뒤인 1976년 가을에 재상영 (“가을 명화 특별 감상회”) 형식으로 다시 걸렸다.

    이 재개봉은 당시 한국에서 ‘외화 명작 재상영 붐’이 일던 시기와 맞물려,
    재난영화 특유의 현장감과 대형 극장 사운드를 앞세운 홍보가 인상적이었다.

    출처 : NAVER 뉴스 라이브러리 1976년09월07일 조선일보 캡처

    🐉 맹룡과강 (The Way of the Dragon, 1972)

    구분내용
    감독 / 각본 / 무술 연출이소룡 (Bruce Lee)
    제작국가홍콩 / 골든하베스트 (Golden Harvest Production)
    개봉일(홍콩)1972년 12월 30일
    한국 개봉일1974년 10월 11일 (피카디리극장 최초 개봉)
    재개봉1976년 9월 4일 국도극장 (가을 명화 특별감상회)
    장르액션 / 무협 / 드라마
    상영시간약 100 분
    촬영지홍콩,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실촬영)
    제작사Concord Production Co. / Golden Harvest
    음악조셉 쿠(顧嘉煇 / Joseph Koo)
    주요 출연
    이소룡 (Bruce Lee) – 탕룽 (Tang Lung) 역
    노라 미아오 (Nora Miao) – 천 칭화 (Chen Ching Hua) 역
    척 노리스 (Chuck Norris) – 콜트 (Colt) 역
    로버트 월 (Robert Wall) – 썬 역
    황인시 (Hwang In-Sik) – 고용 폭력배 역 (특별 출연)

    중국 청년 탕룽(이소룡) 은 로마의 중국 식당을 돕기 위해 유럽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은 현지 마피아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고, 탕룽은 이들을 상대로 맞선다.
    서툰 언어와 낯선 환경 속에서도 그는 점차 자신의 무술 실력을 드러낸다.
    결국 마피아의 최고 용병 콜트(척 노리스) 와 로마 콜로세움에서 운명의 결투를 벌인다.
    치열한 싸움 끝에 탕룽은 승리하지만, 쓰러진 적을 덮어주며 떠난다 — 무인의 존엄을 남긴 채.

    ⚔ 인상 깊은 장면

    • 콜로세움 결투
      이소룡과 척 노리스의 실전 같은 대결 장면은 영화사를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무도(武道)의 철학이 담긴 장면이다.
    • 탕룽의 성장
      처음엔 순박하고 어색한 청년이었지만, 위기 속에서 한 인간이자 무인으로 완성되어 간다.
    • 엔딩의 여운
      “이긴 자의 비애” — 싸움에서 이겼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고요한 슬픔뿐이었다.

    🎬 전설은 스스로 만든다

    이소룡은 단 한 편의 영화에서 감독, 각본, 무술 연출을 모두 직접 맡았다.
    그 작품이 바로 《맹룡과강》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무도(武道) 의 철학이 담긴 이소룡의 인생 선언문에 가깝다.


    🎥 로마, 그리고 전설이 된 무허가 촬영

    1972년 여름, 이소룡은 실제 로마 콜로세움 주변에서 무허가 촬영을 감행했다.
    허가를 받지 못했기에 팀은 경찰의 순찰 공백을 노려 새벽마다 촬영을 진행했고,
    그 결과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되었다.
    콜로세움의 고대 석벽 사이에서 펼쳐지는 동양 무술의 리듬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 세기의 대결 — 이소룡 vs 척 노리스

    《맹룡과강》의 백미는 단연 이소룡과 척 노리스의 결투 장면이다.
    대역도, 과장된 편집도 없다.
    두 무술가의 진짜 호흡과 기술, 그리고 무인의 존엄이 그대로 담겼다.
    이 장면은 지금도 “무술 영화 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리얼 격투씬”으로 평가받는다.


    🧘 철학 — 자신을 이기는 길

    이소룡은 영화 속 탕룽의 입을 빌려 말한다.

    “무술은 상대를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길이다.”

    그의 주먹은 빠르지만, 그 안에는 분노가 아닌 깨달음이 있었다.
    《맹룡과강》은 승리보다 더 깊은 싸움,
    자신과의 싸움을 그린 영화다.


    1976년 9월, 국도극장에서 재개봉된 이 작품은
    이소룡 최대의 걸작! 로마를 뒤흔든 용의 발톱!”이라는 카피와 함께
    관객들의 가슴을 다시 불태웠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용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스크린 위에서 살아 숨쉰다.

    출처 : NAVER 뉴스 라이브러리 1976년10월27일 조선일보 캡처
    원제The Ten Commandments
    감독세실 B. 데밀 (Cecil B. DeMille)
    제작국가미국
    제작 / 배급Paramount Pictures
    개봉일(미국)1956년 10월 5일
    한국 재개봉일1976년 9월 4일 (서울극장)
    장르성서 드라마 / 서사극 / 역사
    상영시간약 220분
    주연찰턴 헤스턴(모세), 율 브리너(람세스 2세), 앤 백스터(네페르티리)

    고대 이집트, 노예로 태어난 히브리인 모세(찰턴 헤스턴)
    왕자로 자라지만, 자신이 억압받는 민족의 일원임을 깨닫는다.
    그는 이집트를 떠나 신의 부름을 받고,
    바로에게 맞서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키는 사명을 맡게 된다.
    홍해가 갈라지고, 불기둥이 하늘을 가르며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십계(十誡) 를 돌판에 새긴다.

    인상 깊은 장면

    • 홍해의 기적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거대한 바다가 갈라지며 길이 열리는 장면은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웅장하다. 당시 기술로 구현한 이 장면은
      영화 특수효과의 역사에 길이 남았다.
    • 신과 인간의 대화
      신의 목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모세가 계명을 새기는 장면은
      종교를 넘어 인간의 도덕적 각성을 상징한다.
    • 람세스와의 대결
      권력과 신앙, 인간의 오만함이 부딪히는 장면으로
      당시 할리우드의 대서사적 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 1976년 재개봉의 의미

    1970년대 중반, 외화 명화 재상영 붐이 일던 시기.
    〈포세이돈 어드벤처〉, 〈벤허〉와 함께 〈십계〉 역시
    다시 극장가를 찾으며 “고전의 감동을 되살린 특별 상영회”로 자리 잡았다.
    서울극장의 대형 스크린에 펼쳐진 홍해의 장면은
    당시 관객들에게 단순한 영화가 아닌 신앙적 체험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열 가지 계명”이라는 문구처럼
    〈십계〉는 단순한 성서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정의와 도덕,
    그리고 믿음의 근원을 되짚는 불멸의 고전이다.

    1976년 9월, 서울극장에서 울려 퍼진 모세의 외침 —

    “Let my people go!”
    그 목소리는 지금도 세대를 넘어 울림을 준다.

    1976년 가을의 극장가는 단순히 ‘신작을 보는 곳’이 아니라, 과거의 명작을 다시 불러내고 관객과 재회하는 장(場)이 되었습니다.

  • 1976년 5월~6월 대한민국 극장 우리들이 알고있는 주요 외화 상영작

    출처 : NAVER 뉴스 라이브러리 1976년05월20일 조선일보 캡처

    한글 제목: 빠삐용

    영문 제목: Papillon

    제작 국가: 미국

    원작: 앙리 샤리에르(Henri Charrière)의 자전적 소설 《Papillon》

    감독: 프랭클린 J. 샤프너 (Franklin J. Schaffner)

    주연: 스티브 맥퀸 (Steve McQueen), 더스틴 호프만 (Dustin Hoffman)

    장르: 드라마 / 모험 / 실화

    대한민국 개봉: 📅 1979년 5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강렬한 인간 의지의 이야기로, 자유를 향한 불굴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스티브 맥퀸의 묵직한 연기와 더스틴 호프만의 섬세한 연기가 조화를 이루며 명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1970년대 대표적인 감옥 탈출 영화이자, 이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감옥으로 보내진 앙리 “빠삐용” 샤리에르는 탈출을 포기하지 않고 수차례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위조범 루이 드가와 깊은 우정을 쌓으며 인간의 자유 의지와 존엄성을 지켜나간다.
    수십 년의 고난 끝에 결국 그는 감옥 섬을 탈출해 자유를 향한 길에 오른다.

    독방에 갇힌 빠삐용이 미쳐가는 듯한 상황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장면과 마지막 cliff 탈출에서 바다로 몸을 던지는 결단과 해방의 순간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당시 국내 언론은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희망”이라는 메시지에 주목하며 높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출처 : NAVER 뉴스 라이브러리 1976년06월18일 조선일보 캡처
    • 한글 제목: 엑소시스트
    • 영문 제목: The Exorcist
    • 제작: 미국 / 1973년
    • 대한민국 개봉: 📅 1976년 6월
    •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 (William Friedkin)
    • 원작: 윌리엄 피터 블래티 (William Peter Blatty)의 동명 소설
    • 주연: 엘런 버스틴, 린다 블레어, 맥스 폰 시도, 제이슨 밀러
    • 장르: 공포 / 스릴러 / 초자연

    워싱턴 D.C.에 사는 소녀 리건은 갑작스러운 이상 행동과 초자연적 현상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의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어머니는 가톨릭 교회의 도움을 요청하고, 두 명의 신부가 ‘구마 의식(엑소시즘)’을 시도한다. 극한의 대결 끝에 악마를 몰아내지만, 신부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며 소녀를 구한다.

    인상깊은 명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침대 위에서 몸이 들려오르는 장면
    • 거꾸로 걸어 내려오는 ‘스파이더 워크’
    • “더 파워 오브 크라이스트 컴펠즈 유(The power of Christ compels you)!”라는 구마 장면 대사

    영화는 1973년 미국 개봉 당시 전 세계적으로 충격과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한국에서는 검열·수입 심의 절차로 인해 약 3년이 지난 1976년 6월에서야 극장에 걸렸습니다.

    개봉 당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공포”라는 슬로건으로 홍보되었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상영되었습니다.

    1970년대 한국 극장가에서 이례적으로 장기 상영하며 큰 화제를 모았고, 일부 관객이 쇼크로 실신했다는 신문 보도도 있었을 만큼 충격적인 영화로 회자되었습니다.

    1979년 5월과 6월은 휴머니즘의 철학적 충격과 초자연이라는 심리적 충격을 주는 극장가 였습니다.